스토킹 진정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까? (고소 취하 가능 여부와 반의사불벌죄 폐지의 모든 것)
지옥 같던 스토킹의 터널. 잠 못 이루는 밤과 꺼지지 않는 휴대폰 화면의 공포 속에서, 당신은 큰 용기를 내어 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토록 당신을 괴롭히던 스토킹이 멈췄습니다. 끔찍했던 시간이 끝나고 평온이 찾아오자,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는데, 굳이 이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어야 할까?" "진정서를 취소하면, 이 모든 일을 정말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원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스치며, 덜컥 겁이 나고 막막해집니다. 내가 취소를 원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사와 처벌이 계속 진행되는 것은 아닐지,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런 딜레마에 빠진 분들을 위해, 스토킹 진정서(고소장)를 '취하'하는 것이 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스토킹 범죄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되었는지, 그리고 진정서를 취하할 경우 앞으로 어떤 절차가 진행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A부터 Z까지 상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 매우 중요: 본 글은 스토킹 범죄의 법적 절차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변호사의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스토킹은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범죄이며, 당신의 '안전'이 그 무엇보다 최우선입니다. 진정서 취하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반드시 변호사나 스토킹 피해자 지원 기관과 상담하여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 가장 중요한 변화: 스토킹 범죄, 왜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었나?
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2023년 7월에 이루어진 '스토킹처벌법'의 중대한 개정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반의사불벌죄' 조항의 폐지입니다.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란 무엇이었을까?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면, 검사가 가해자를 재판에 넘길 수(기소) 없고, 따라서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폭행죄나 명예훼손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왜 스토킹 범죄에서 이 조항이 폐지되었을까? 🚫 과거에는 스토킹 범죄도 반의사불벌죄였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2차 가해 및 보복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 가해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끊임없이 연락하거나 찾아오는 등 '합의를 위한 2차 스토킹'을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피해자 협박 및 회유: 가해자나 그 가족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감정에 호소하며 회유하여 억지로 합의와 고소 취하를 받아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범 위험성 증가: 피해자가 두려움에 못 이겨 고소를 취하해주면,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나 보복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토킹을 재개하는 비극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제 우리 법은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의 의사만으로 처벌을 막을 수 없는, 사회 전체가 개입해야 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법적 장치입니다.
📝 '진정서/고소장 취하'의 진짜 의미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었다면, 진정서 취하가 아예 불가능한가요?"
아닙니다. 진정서나 고소장을 '취하'하는 것 자체는 가능합니다. 경찰서에 방문하여 '진정(고소) 취하서'를 작성하고 제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법적 효과'입니다.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된 지금, 당신의 '취하'는 수사나 재판을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절차 중단 스위치'가 더 이상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서 취하는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피해자의 '의사 표시'로서의 의미: 당신의 '진정서 취하'는, "나는 더 이상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당신의 현재 심경과 의사를 수사기관(경찰, 검찰)과 사법기관(법원)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됩니다.
양형(量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수사관, 검사, 판사는 당신이 제출한 '취하서'나 '처벌불원 의사'를 사건 파일에 첨부하고, 향후 가해자에 대한 처분(기소 여부)이나 형량(벌금, 징역 등)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정상참작 사유'로 고려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진정서 취하는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드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낮춰달라고 요청하는 '탄원서'와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진정서 취하 후, 수사관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당신이 진정서를 취하했더라도, 수사관은 사건을 무조건 종결하지 않습니다. 수사관과 검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저울질하여 사건의 진행 방향을 결정합니다.
1. 피해자의 의사 (당신의 '취하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는 매우 중요하게 존중됩니다. 가해자와 원만히 합의했고, 진심으로 용서하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가 명확하다면, 수사기관은 사건을 불기소(혐의없음, 기소유예 등) 처분으로 종결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2. 사안의 중대성과 재범 위험성 (객관적 사실): 하지만 피해자의 의사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수사기관은 사건의 객관적인 내용을 함께 살펴봅니다.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 스토킹이 얼마나 오래, 집요하게 이루어졌는가? 흉기를 사용하거나 협박의 수위가 높았는가? 주거 침입 등 다른 범죄가 결합되었는가?
가해자의 반성 정도와 재범 위험성: 가해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가? 과거에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가? 피해자에게 보복할 가능성은 없는가?
예상 가능한 결과:
사건 종결 (불송치/불기소): 스토킹 행위가 비교적 경미하고, 가해자가 초범이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명확한 경우 → 수사기관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여 사건을 종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원하시는 결과)
수사 계속 및 기소: 스토킹 행위가 매우 심각하고, 가해자의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취하 의사와 상관없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추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가해자를 기소하여 재판에 넘길 수 있습니다.
💌 진정서를 취하하기 전, 반드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
스토킹이 멈췄다는 안도감에, 혹은 가해자의 간절한 사과에 마음이 약해져 섣불리 취하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아래의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답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 나는 지금 정말로 안전한가? 🛡️ 가해자의 스토킹이 멈춘 이유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장의 경찰 수사와 처벌이 두려워 잠시 멈춘 것일까요? 만약 당신이 진정서를 취하하여 법적인 압박이 사라지는 순간, 스토킹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2. 혹시 보이지 않는 압박이나 회유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 가해자 본인이나 그의 가족, 지인으로부터 "한 번만 용서해달라", "사람 인생 망치지 말아달라"는 식의 연락을 받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동정심이나 죄책감 때문에, 혹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의 100% 자유로운 의지가 아닌 상태에서 취하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3. 만약 스토킹이 재발한다면? 🔄 한번 진정(고소)을 취하했던 사건에 대해, 과거의 동일한 행위를 이유로 다시 고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취하 이후에 새로운 스토킹 행위가 발생하면 다시 고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취하했던 이력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사건을 덜 심각하게 보거나, 당신의 진술에 대한 신뢰도를 낮게 평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4. '처벌불원'이라는 의사표시만 하는 것은 어떨까? 📝 사건을 아예 취하하는 대신, '가해자와 원만히 합의하였으며,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였으므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나 '합의서'를 제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는 수사를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않지만, 검사나 판사가 가해자에게 최대한의 선처(기소유예, 벌금형 등)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 실행 단계: 진정서(고소장) 취하 절차
신중한 고민 끝에 취하를 결심했다면,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담당 수사관에게 연락: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서의 수사관에게 먼저 전화하여 진정(고소) 취하 의사를 밝힙니다.
경찰서 방문: 수사관과 약속을 잡고 신분증을 지참하여 경찰서에 방문합니다.
취하서 작성 및 제출: 경찰서에 비치된 '진정 취하서' 또는 '고소 취하서' 양식에 사건번호, 인적사항 등을 기재하고 '위 사건에 대한 진정(고소)을 모두 취하합니다'라고 작성한 뒤 서명 날인하여 제출하면 절차는 마무리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진정서를 취하하면, 과거의 스토킹 행위에 대해 다시 문제 삼을 수 없나요? A. 네,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형사소송법상 고소를 취소한 사람은 동일한 범죄 사실에 대하여 다시 고소하지 못합니다(재고소 금지 원칙). 진정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취하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Q2. '진정서'와 '고소장'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진정서는 수사기관에 특정 범죄 사실을 알리고 조사를 촉구하는 서류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단계입니다. 반면 고소장은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의사를 명확하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서류입니다. 보통 진정서가 접수되면 경찰이 내사를 거쳐 혐의가 있다고 판단될 때 정식 사건(입건)으로 전환되며, 이때 진정인이 고소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Q3. 가해자가 합의를 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합의는 당신의 피해를 금전적으로나마 보상받고,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변호사나 가족 등 제3자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합의 시에는 '정신적 피해보상(위자료)'과 함께, '향후 일체의 접근 및 연락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시 위약금을 지급한다'는 재발 방지 조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Q4.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운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나요? A. 그럼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여성긴급전화, 스토킹피해자 지원센터, 해바라기센터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피해자 지원 기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심리 상담, 법률 지원, 의료 지원 등 당신이 이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모든 도움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긴급전화 ☎️ 1366
경찰청 스토킹 피해 신고 ☎️ 112
마치며: 당신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스토킹 진정서를 취하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건을 지우개로 지우듯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아니며, 수사와 처벌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개정된 스토킹처벌법의 가장 큰 목적은, 가해자의 처벌보다 '피해자의 안전 확보와 재발 방지'에 있습니다.
진정서 취하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부디 당신의 마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십시오. 한순간의 동정심이나 두려움이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용기 있는 첫걸음을 뗀 사람입니다. 그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전문가와 상담하고 충분히 고민하여 가장 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내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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