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 원의 전선, 그리고 500만 원의 진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를 찌르던 2월의 어느 날, 29세 청년 민재는 유치장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혐의는 '특수절도'. 친구와 함께 인적이 드문 공사장에 들어가 전선 뭉치를 훔쳐 고물상에 판 것이 화근이었다. 생활비가 급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경찰 조사 내내 민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자 조서를 읽던 담당 수사관의 한마디가 민재의 귀를 때렸다.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도난 물품 가액이 총 5천만 원입니다. 이거 액수가 커서 구속 영장 청구될 수도 있어요."
"네? 5천만 원이라니요? 저희가 가져간 건 공사장에 버려져 있던 자투리 전선들이랑 폐자재였습니다. 고물상에서도 30만 원밖에 못 받았는데요?"
민재는 억울함에 소리쳤지만, 피해자인 건설사 현장 소장은 완강했다. 그날 창고에 있던 새 전선 드럼까지 몽땅 없어졌으니, 민재 일당이 가져간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었다. CCTV는 입구에만 있었고, 창고 내부를 비추지 않아 민재 일당이 정확히 무엇을 들고 나왔는지 흐릿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5천만 원어치 도둑이 된다. 특수절도는 벌금형도 없다는데, 나는 감옥에 가는 건가?'
공포가 엄습했다. 국선 변호인을 만났지만,
"피해자와 합의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5천만 원을 물어줄 돈이 있었다면 애초에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재는 유치장에서 나온 뒤(다행히 영장은 기각됐다), 미친 듯이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범행 당일 찍혔던 주변 방범 CCTV를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했다. 친구와 둘이서 끙끙대며 들고 나온 포대 자루의 크기와 부피가 5천만 원어치 전선 드럼을 담기엔 턱없이 작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또한, 장물을 매입한 고물상 사장을 찾아가 읍소했다.
"사장님, 그때 제가 판 거 폐전선이었잖아요. 장부 좀 제발 복사해 주세요. 저 감옥 가요."
고물상 사장은 귀찮아했지만, 민재의 절박함에 못 이겨 거래 명세서와 당시 물품 사진을 내주었다. 사진 속 전선은 피복이 벗겨지고 녹슨 '폐전선'이 명백했다. 민재는 이 자료들을 모아 '변호인 의견서'와 함께 검찰에 제출했다.
[주장 요지]
피해자가 주장하는 신품 전선(5천만 원)은 피의자들이 운반할 수 없는 무게와 부피임.
실제 매각된 물품은 폐전선이며, 시가 감정 결과 피해액은 약 480만 원으로 추산됨.
피해 금액이 과다 계상되었음을 입증하는 고물상 거래 내역 첨부.
검찰 조사실, 검사는 민재가 제출한 두툼한 서류와 피해자의 진술서를 번갈아 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피해자분, 여기 사진이랑 거래 내역 보니까 현장에서 없어진 신품 전선이랑 이 친구들이 가져간 거랑은 다른 것 같은데요? 5천만 원이라는 주장을 입증할 재고 관리 대장 가져오셨습니까?"
현장 소장은 우물쭈물했다. 결국, 민재의 혐의 액수는 5천만 원에서 480만 원으로 정정되었다. 특수절도죄의 법정형은 무겁지만, 피해 금액이 대폭 줄어들고 피해 복구(공탁)를 한 점이 참작되었다.
재판 당일, 판사는 민재에게 말했다.
"특수절도는 실형이 원칙이나, 피고인이 피해 금액을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실제 피해액이 경미한 점, 그리고 그 금액을 공탁한 점을 참작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법정을 나서는 민재의 다리가 풀렸다. 5천만 원의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서 몇 년을 썩을 뻔했던 운명이, 끈질긴 증거 수집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 피해 금액 입증은 감형의 '핵심 열쇠'입니다
특수절도 혐의를 받고 있을 때,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 금액과 실제 자신이 훔친 물품의 가액이 다르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감형의 지름길입니다. 단순히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은 법원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 반드시 실행해야 할 3단계 솔루션
객관적 가액 산정 자료 확보: 훔친 물건의 모델명, 연식, 상태(중고/신품 여부)를 특정하고, 인터넷 중고 시세나 전문가 감정(필요시)을 통해 객관적인 가액을 산출하여 제출하십시오.
피해자 주장의 모순 탄핵: 소설 속 민재처럼, 물리적으로 훔칠 수 없는 부피나 무게였다는 점, CCTV상 이동 경로 등을 분석하여 피해자의 과장된 주장을 반박해야 합니다.
수정된 금액으로 합의 시도: 입증을 통해 피해 금액을 낮췄다면, 그 금액을 기준으로 합의를 시도하거나 형사 공탁을 진행하십시오. 5천만 원 합의는 불가능해도 500만 원 공탁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집행유예와 실형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 왜 피해 금액 입증이 중요한가?
특수절도죄는 일반 절도와 달리 벌금형이 없고, 오직 징역형(1년 이상 10년 이하)만 규정되어 있는 중범죄입니다. 즉, 혐의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는 감옥에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판사가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것뿐입니다.
1. 양형 기준(Sentencing Guidelines)과 피해 금액 📉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절도 범죄의 형량을 정할 때 '피해 규모(금액)'를 가장 중요한 인자로 봅니다.
1억 원 이상: 가중 처벌 대상
피해 경미: 감경 요소
만약 피해자가 홧김에, 혹은 보험 처리를 위해 피해 금액을 10배 뻥튀기했는데 피고인이 이를 반박하지 못하면, 판사는 기록된 10배의 금액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합니다. 이는 집행유예가 나올 사안을 실형 1~2년으로 만들 수 있는 치명적인 요소입니다.
2. 합의의 현실적 가능성 💰
형사 재판에서 가장 강력한 감형 사유는 '피해자와의 합의'입니다. 하지만 피해 금액이 5천만 원으로 잡혀 있으면, 합의금도 그 수준에서 시작됩니다. 현실적으로 낼 수 없는 돈이라면 합의는 결렬되고 실형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증거를 제출하여 수사 기관이 인정한 피해 금액을 500만 원으로 낮춰놓아야, 피고인이 현실적으로 마련 가능한 돈으로 합의를 하거나 공탁을 걸어 선처를 구할 수 있습니다.
3. 특수절도의 성립 요건과 증거 싸움 🛡️
야간 손괴 후 침입: 밤에 문이나 벽을 부수고 들어감.
흉기 휴대: 위험한 물건을 소지함.
2인 이상 합동: 두 명 이상이 같이 함.
이 요건에 해당하면 무조건 특수절도입니다. 죄명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예: 일반 절도로 변경 불가), 남은 전략은 오직 '죄질을 가볍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이때 "훔친 물건이 소액이고, 생계형 범죄였다"는 점을 증거로써 증명하는 것이 변호의 핵심이 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특수절도죄는 초범이라도 감옥에 가나요?
👉 A. 특수절도죄는 법정형에 벌금형이 아예 없어서 원칙적으로는 징역형입니다. 하지만 초범이고, 피해 금액이 적으며, 피해자와 합의가 되었다면 높은 확률로 '기소유예'(검사 선에서 종결) 또는 '집행유예'(법원에서 석방)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되지 않고 피해 금액이 크다면 초범이라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Q2. 훔친 물건을 돌려주면 피해 금액이 0원이 되나요?
👉 A. 법적으로 범죄는 이미 성립(기수)했으므로 피해 금액 자체가 0원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품의 회수'는 매우 강력한 감형 사유입니다. 물건을 돌려주었다는 '압수물 가환부 영수증'이나 피해자의 '확인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합니다. 이는 실질적인 피해가 복구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Q3. 피해자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르며 합의를 거부합니다. 어떡하죠?
👉 A. 이럴 때를 위해 '형사 공탁' 제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공탁할 수 있었으나, 법이 개정되어 이제는 사건 번호만 알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길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피해 금액(예: 중고 시세)에 약간의 위로금을 더해 공탁을 걸면, 법원은 이를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인정해 줍니다.
Q4. 친구는 망만 봤는데도 특수절도인가요?
👉 A. 네, 그렇습니다. 우리 법원은 '합동범'의 범위를 넓게 봅니다. 직접 물건을 집지 않고 망만 보거나, 밖에서 차를 대기하고 있었더라도 기능적 행위 지배가 인정되어 똑같이 특수절도죄의 공범으로 처벌받습니다. 다만, 가담 정도가 약하다는 점을 어필하여 주범보다 낮은 형량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Q5. 피해 금액을 입증할 영수증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 A. 영수증이 없다면 '동일 모델의 인터넷 중고 거래 시세 캡처', '해당 연식 제품의 감가상각표', '유사 물품의 도매가 내역' 등을 간접 증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고가의 물품이라면 감정평가사의 약식 감정을 받아 제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핵심은 판사가 보기에 "피해자의 주장이 과장되었구나"라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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